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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eju, 2014. 03.

     

  4. jeju, 201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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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40314, 제주,

     

  7. #camino de santiago
    2012. 11. 09. +29
    “산타이레네-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30일 째 아침이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오늘 아침은 유난히 어두컴컴하고 차갑다. 20km를 걷고 나면 이 길의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 한다. 왠지 이 길이 끝나는 게 아쉬워서 오늘은 여느 때보다 더 오랫동안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일어난다.
    마지막 날이라 오늘만큼은 깨끗한 옷을 입고 싶었지만, 30일 동안 단 두벌의 옷만 돌려입다 보니 깨끗한 옷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어제 입었던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더 입어도 될 것 같아 대충 그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으니 한 순례자가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너 한국에서 왔니?”
    “응 한국사람이야”
    “반가워! 나 한국 사람들 많이 만났었는데, 다들 나이스 하더라!”
    “고마워^^”
    덕분에 꽤 기분 좋은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 옆에 있던 지팡이와 판초우의를 챙기고, 친절했던 호스피탈로에게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두웠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습기 때문에 깊은 물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 조급했는지 숙소에서 내가 제일 먼저 출발했고, 완전히 혼자 걷게 되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괜히 코 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났다. 한번 슥 훔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마침 이어폰에서는 페퍼톤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아 또 한번 다시 울컥했다.
    “안녕 고마웠어, 짧았던 너와 나의 계절, 끝은 또 하나의 시작
    잔뜩 배낭을 멘 작은 어깨를 두드린다. 이젠 떠나야 할 시간”

    눈물이 나다가도 점점 산티아고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런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닌가보다. 오늘따라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참 밝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을 하였고, 기쁨의 산이라는 뜻의 몬테 데 고소(Monte de Gozo)를 넘으면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출근하는 듯한 한 아저씨가 인사를 건네며 어디서부터 출발했냐고 묻는다. 생장부터 출발했다고 하니 파인하냐고 묻길래 솔직한 상태는 파인한 것 같지 않아 그냥 허허 웃었더니 딱 알아차렸나보다. 아저씨도 웃으며 힘드냐며 웃는다. 그러고는 한마디 툭 건넨다.
    “Welcome to santiago!” 진짜 긴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매년 수만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이 도시는 생각만큼이나 크고 복잡했다. 한 달간 시골길을 걷다보니 큰 도시를 만나면 지레 겁부터 먹는다. 소매치기를 만나지는 않을까? 길을 잃지는 않을까? 바짝 긴장을 하면서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었다. 횡단보도를 지났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눈앞에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졌다.

    매일 매일 상상을 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지, 대성당을 마주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는 않을지.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커다란 성당 앞에 내가 한없이 작아졌을 뿐 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러한 기분이 꽤나 당황스러웠다. 먼저 앉아 있던 순례자와 눈으로 인사를 한 후 그 옆에 앉아 하염없이 성당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뭘 위해 걸었나?”,“나는 이 순례를 통해 무엇을 얻었나?”하는 거창한 의문은 들지 않았다. 그저 지나 온 한 달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첫 날 피레네에서 길을 잃고 천사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파서 아침부터 울었던 것도, 새벽에 혼자 출발해서 산에서, 길에서 공포에 떨었던 것도, 맛있는 음식들을 다함께 먹어서 더욱 맛있었던 그 날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도, 그저 평범한 순간들이었다. 이제 그 것은 우리의 기억속에, 우리의 수다 속에 간직 될 추억이 되었다.

    그러다가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며칠 전이 문득 떠올랐다. 친구와 걸으며 얘기 했던 적이 있다. 마지막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 길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겠다며 우리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고, ‘사람들이 말하는 이 길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그 질문 때문에 유난히 힘들었던 날 이었다. 그리고 지금 대성당 앞에서 떠오른 수많은 순간들이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임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내가 지내왔던 매일 매일이, 그리고 어느 때보다 솔직했던 나의 모든 감정들이 충분히 내 걸음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항상 그렇다. 걷는 내내 대답할 수 없었던 많은 질문들을 순례의 마지막 순간에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나서야 대답할 수 있었듯이, 진정한 의미는 그 순간을 떠나봐야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가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돌아보았을 때, 그 사소한 순간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임에는 틀림이 없다. 내가 도망치듯 떠나왔던 직장도, 지레 겁을 먹어 꺼내지도 못한 청춘의 설레는 고백들도 어느 하나 묻어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목소리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아빠 엄마도 한달 내내 나와 이 길을 걸으셨겠지. 친구에게 문자도 보내고 혼자 멍하니 성당을 바라보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부른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누구지싶어 멀리 쳐다보니 성운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고작 헤어진지 3일인데 오랜만에 본 성운이가 너무 반가웠다. 혼자 성당 들어가기 무서워서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 맥주 공짜로 먹었다는 얘기, 증명서 받으러 가자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순례자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증명서 발급을 위해 크레덴시알을 봉사자에게 건넸다. 크레덴시알에 찍힌 세요를 보니 괜히 벅차올랐다. 그리고는 봉사자가 물었다. “이 길을 걸은 목적이 무엇이예요?” 한참을 생각했지만 끝끝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 목적, 천천히 입을 떼었다. 손에 쥐어진 증명서를 보았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증명서 속의 내가 이토록 자랑스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성운이가 공짜로 맥주를 먹었다던 바르에 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일행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헤어졌던 일행들을 모두 만났다. 걷는 내내 이야기하던 자라에서. 오랜만의 쇼핑에 신이 났는지 다들 쇼핑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들 깔끔해진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산티아고 시내를 거닐며 창진이와 철진이 형제도 만나 저녁을 함께 하자며 이야기도 했고, 천사아줌마, 정말 좋은 친구 루이스 아저씨와 얼싸 안고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산티아고에 도착했고, 우리의 카미노는 끝났다. 같은 경험이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조금은 다를 추억을 안겨준 우리의 카미노가.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길 위의 모습 그대로였다.

    * 나의 모든 동행들에게 깊은 감사를. 기도와 응원으로 함께 해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나의 가장 큰 동행자 되신 분께도.